동조자는 자유 베트남이 패망한 1970년대 미국으로 망명한 베트남 혼혈 청년이 두 개의 문명, 두 개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겪는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사상과 전쟁에 대해서 간략히 나오는데 일단 베트남이 이렇게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으로 나뉘게 된 데에는 프랑스의 식민지배 역사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때도 있었는데요.
✔ 베트남 분단 원인
프랑스 - 일본 그리고 다시 프랑스가 베트남으로 돌아왔을 때, 프랑스는 바오 다이를 내세워 사이공에 괴뢰정권인 "베트남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때 프랑스는 남베트남에서 베트남국을 수립했는데 이에 맞서 1945년 9월 2일 호찌민(胡志明)은 하노이의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언합니다.
이후 북베트남이 수도 사이공을 점령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하고 남베트남과 통일한 후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을 기리기 위해 수도 사이공의 이름을 호치민으로 변경하였죠.
하지만 일단은 이때 나라가 북베트남(사회주의, 호찌민이 지배)과 남베트남(프랑스령)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프랑스는 북쪽의 영토도 수복하기 위해 1946년 11월 23일 하이퐁(Haiphong) 항구에 함포 사격을 가해 전쟁을 일으키는 등 (1차 인도차이나 전쟁) 프랑스와 베트남의 전쟁이 시작되어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 전쟁은 1954년 5월 7일 프랑스군의 거점인 디엔비엔푸(Dien Bien Phu)가 함락될 때까지 9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결국 프랑스의 참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1954년 7월 21일에 '제네바 휴전협정'을 체결하게 되어 프랑스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되었죠.
이때 제네바 협정에 따라 베트남은 17도선에서 남북이 분단하게 되는데요. 강대국에 의해 쪼개진 나라. 어딘가 익숙한 역사에 정이 가는 나라네요.
하지만 프랑스가 철수한 후에도 남베트남은 미국이 멀리서 후방 지원하는 형태로 지원을 해줘서 계속해서 북베트남과 대립했습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남베트남을 적화되게 방치하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같은 편인 자유 진영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적화될 것을 우려하여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 베트남 전쟁? 미국 전쟁!
이렇게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간의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갈등이 시작되자 이는 전쟁으로 발전하여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전쟁이 진행되었는데요.
사실 이 전쟁을 미국과 많은 미국 우호국가에서는 베트남전이라고 부르지만 베트남에서는 미국전쟁이라고 부를만큼, 미국의 원인이 큰 전투였던 것이죠. 그리고 미국에게 많은 영향을 준 전쟁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누구도 따라올 수 있는 강대국이라 자부했던 미국을, 북베트남이 게릴라 전쟁, 공습 전쟁 등을 통해 효율적으로 타격을 주어, 결국 이겼기 때문입니다.
북베트남은 주로 게릴라 전쟁을 펼쳤으며,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군은 대규모 군사 작전을 통해 반격했는데요. 인적자원을 이긴 아주 획기적이고 의지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북베트남은 공습 전쟁을 주로 수행하여 미국 군대의 인프라와 기지를 타격하는 등 전투에 유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베트콩
흔히 베트콩이라고 하는 북베트남 사람들을 가리키던 말도 이때 나왔는데요.
베트콩은 '베트남 공산주의자(Việt Nam Cộng-sản)'의 약칭입니다. 이 말은 남베트남 초대 대통령(총통) 응오딘지엠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본래는 멸칭이었지만 지금은 공산주의자들도 사용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남베트남 해방군 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해요.
흔히 베트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베트남 농민들의 일상복을 입고 nón lá라고 불리는 삿갓을 쓰고 소총을 들고 있는 집단이지만 실제 베트콩은 북베트남 정규군으로부터 피복, 무기 등의 물자나 교육 훈련 등 각종 지원을 받아 정규군에 준하는 차림새를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베트콩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쳐 북베트남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는데요. 스스로 남베트남의 자생적 조직이라고 주장했으나 미국과 남베트남은 이들은 북베트남의 지령을 받는 하부 조직으로 인식했습니다. 현재의 베트남도 베트콩이 베트남 인민군 소속이라고 인정했다고 하네요.
최초 결성은 1960년 12월 남베트남의 탄랍이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남베트남 정권 붕괴를 위해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산주의자들뿐만이 아니라 남베트남 정부의 차별을 받던 농민들까지 가입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들의 다양한 성별과 연령, 전투력 등으로 인해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수도인 사이공으로 진입하였고, 남베트남은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트남은 통일되게 되었죠.
✔ 베트남 전쟁 종결
이로써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종결되었으며,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은 이듬해인 1976년 7월 2일 남북 베트남이 통합해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수립하면서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습니다.
✔ 베트남의 현재
그리고 베트남은 현재까지도 사회주의 공산 국가인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입니다. 공산당이 단일 정당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당 총서기장과 국가주석이 주요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1979년 시작되어 1986년 공식화된 개혁 정책인 "도이 머이(Doi Moi)"를 통해 베트남은 시장경제에 합류하였습니다. 나라의 발전을 위한 정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의 원칙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이 유연해졌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유재산도 가지고 장사도 하고 관광업도 하는 베트남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 보트피플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미국 및 연합군이 추산한 바로는 약 120만 명, 베트남 정부가 추산한 바로는 약 3백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쟁이 끝나자 1970년대 후반, 베트남에는 베트남을 떠나는 보트피플(Bòt people)이 증가했습니다. 이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고통으로 인한 이민 현상이었는데요. 베트남 전쟁과 이후 공산화 과정에서 베트남을 탈출하려는 남베트남 사람들이 무작정 배를 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신세가 되버린 것입니다.
이들을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불렀는데요.
1973년부터 1988년 사이에 걸쳐 보트피플은 약 1백만 명 이상 발생하였고,운좋게 다른 나라로 망명에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만 해상에서 탈수와 일사병 굶주림 등으로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 내에서 남베트남이 망한 후 남베트남 군인, 경찰 등은 수용소에 연행되었고,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되었는데 이곳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고 사실상 이슬로 사라지는 곳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좌익으로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도 모두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되었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역사 속에서 이념에 따라 사람을 죽고 죽이는 역사는 어느 곳에서든 늘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역사를 끊기 위해서는 대체 뭐가 필요한걸까. 답답한 마음이 드는 역사 공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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