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에 핀 제비꽃
성혜림
카카오웹소설
후원에 핀 제비꽃. 줄여서 후제꽃은 정말 영화처럼 인간 군상에 대한 뛰어난 관찰을 보여주며 다양한 등장인물의 깊이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여느 웹소설에서 종종 보이는 성녀가 등장하는데 이 성녀가 좀 특별하게 등장한다. 일단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천민 출신이다. 어릴적부터 살기가 순탄치 않았고 갑자기 성녀 성흔이 밣현된 이후의 대우나 선택도 녹록치 않았다. 아는게 없으니 선택하나에도 두려워하며 선택해야했고 배울게 많았고 아무리 배워도 손가락질 받았다.
그동안 귀족가에서만 성녀가 나왔던 것도 이상했지만 나라를 구할 성녀를 그렇게 대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성녀라고 자존심을 부린 것도 아니고 거만하게 굴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굴었는데 그런 반응이 나온건 사실 오히려 그녀가 조심스럽게 굴었기 때문도 있었다.
그녀가 당당하고 오만했다면 갑작스럽게 생겨난 자신의 권력을 잘 활용해서 사람들을 다스렸다면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작은 것에 괴로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럴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럴줄 아는 사람이라서 작은 것에 마음이 동했고, 작은 호의에 작은 추억에 하나하나 원치 않아도 마음을 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했고 사랑을 지켜냈다. 가장 성녀다운 스토리가 아닐까.
그리고 말룸. 말룸은 성녀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성녀가 말룸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한건 스포라서 아래 스포 영역에서 얘기하겠지만 그 둘의 존재가 서로 얽히고 섥혀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너무도 잘 확인하게 하면서도, 이기심을 내려놓는 순간 그저 '마땅히 해야할 대로' 행동하는 순간 수많은 이들의 오래된 고통이 끝나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할수록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무신은 말룸을 만든 존재다. 그러나 그도 그 나름대로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설명이 인상깊었다. 어떻게 보면 허무신도 창조신도 자신들이 만든 존재이자 셀수없는 세월동안 보아온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내 인생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보면,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허무를 받아들이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기본적으로 철학적이고 인내하는 존재라고.
아마도 이런 인간이 만든 스토리에서 나오는 신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 영원하고도 거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 존재로서, 인간이 보기에는 영원히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실제 신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인간이 만든 스토리 속 신은, 질투 때문에라도 늘 그런식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두려움과 허무 속에서 인간을 살리고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너무나도, 허무할정도로 간단한 해결방법.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에 웃고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에 울고 그러나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힘입어 살아간다.
그것또한 <후원에 핀 제비꽃>에서 너무 잘 나타나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이자카의 나라에서는 일처다부제도 등장하는데 여기 첩들이 다 친한 사이라는 것, 비올렛이 왔는데 비올렛에게도 제법 잘 대해줬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물론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자카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화목할 수 있다고, 나중에는 비올렛 때문에 균형이 깨질 수 있어 비올렛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떠날 수 있게 도와주지만, 그 균형이 있는 한 잘 지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럴 수 있는 남편의 부와 정력(아내가 한명이었다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묘사됨) 이 바탕이 되어야 겠지만, 그런 설정을 함으로써 그게 가능한가, 그런 균형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욕망을 가지지만 그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이런 균형만 잃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스토리를 통틀어 어떤 고난과 역경의 키는 솔직함이 아닐까 생각했다. 잘못은 고백하고 과오를 바로잡는 것. 거짓말을 했다면 말해주고, 중요한걸 말해주지 않았다면 또 말해주고, 상대가 알 수 없는 부분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다면 또 말해주는 것.
결국 사랑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결론을 내려보게 되는 스토리였다.
등장인물
비올렛. 천민이었다가 성녀가 되는 존재. 수많은 비밀과 고난을 겪게 되는 성녀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게 되는 성녀. 많은 일을 겪은만큼 신과 세상의 불합리에 의문을 가지고 이를 저주하지만 그를 둘러싼 따뜻한 사람들에 의해 끝내 지켜지고 자신도 끝내 그들을 지킨다.
에셀먼드. 천민이었다가 성녀가 된 비올렛을 맡게 된 후작 가문의 장남. 우직하고 표현에 서툴어 그저 행동으로 얘기하는 행동파. 관계에도 서툴어 어린 성녀를 잘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대신 여러번 몸빵을 했다. 성녀 때문에 목숨도 여러번 잃을뻔 하고 직위도 여러번 내려놨지만 마음을 굽히지 않는다.
앤. 후작가 집사의 딸. 솔직하고 정직한 성격으로 비올렛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 첫번째 따뜻한 존재.
다니엘. 후작가의 둘째 아들. 첫째, 셋째와 달리 아픈 몸 때문에 아버지는 그를 탐탁치 않아했고 어머니는 불쌍히여겨 잘 케어해주는 듯 했으나 저택에 불이난 날, 어머니가 첫째와 셋째만 챙기는 걸 보고 자기 편은 없다는 걸 실감. 비뚤어진 성격으로 자란다. 천민이자 성녀인 비올렛을 사랑했지만 남들 앞에선 들키지 않으려 했고 비올렛을 위로하는가 하면 절망시키고 자신이 있는 지옥에 함께 있으려 발버둥친다.
에이든. 후작가의 셋째 아들. 사랑을 듬뿍받아 몸과 마음이 건강해 비올렛을 끝까지 챙겨준다. 비올렛이 차갑게 돌아섰을 때도. 첫째와는 다른 느낌으로 비올렛을 사랑하며 비올렛을 위해 울고 웃으며 비올렛을 위해준 사람.
에멘가르트 후작. 황제파라서 시키는대로 성녀의 선택을 받아 성녀를 양자로 들이고 키운 양아버지. 부인이 일찍 죽고 세아들만 키워봤다가 처음 딸을 키워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비올렛에게 사죄하며 죄스러워하며 비올렛 곁을 지킨 사람.
라이셀 백작. 에멘가르트 후작의 절친. 유쾌하고 표현을 잘 하는 사람.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느낌.
라이셀 백작 부인. 비올렛의 끔찍했던 첫번째 예법교사 이후 진정으로 비올렛을 교육해준 예법교사. 친절하고 상냥하며 비올렛을 딸처럼 교육하고 위해주었다. 하지만 가문을 위해 끝까지 비올렛을 챙겨주진 못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일단락 된 후 비올렛에게 진정한 감사와 사과를 표한 평범한, 그 평범함이 다른 인물들에게는 없어서, 특별한 인물.
시수일레. 라이셀 백작가의 외동딸. 엄마의 만류에도 비올렛의 곁에 남아 비올렛을 위해주며 비올렛의 친구로서 친구답게 그녀와 함께했다. 그녀가 밀어낼 때도.
체자레 티게르난 공작. 비올렛의 신학 스승이자 선왕을 교황 앞에 무릎꿇린 자로 위험한 사람으로 통한다. 하지만 비올렛에게는 한없이 관대한듯 보이기도 하고 또 그런가 하면 그녀를 절망시키는 알 수 없는 사람. 성력이 뛰어나고 성격이 능구렁이 같다. 나이가 꽤 있지만 늙지 않는 능력이 있어 왠만한 젊은 미남의 외형을 하고 있다.
린도. 교황.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리진 않다. 공작의 비밀. 성녀를 맹목적으로 기다려온 자로서 처음엔 과한 집착으로 성녀를 힘들게 하지만 함께 성장하는 인물.
샤를. 황제. 공작이 무릎꿀린 선왕의 아들의 아들. 할아버지의 굴욕으로 교황파를 극혐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러나 다정하고 용감한 성격으로 불합리를 눈치채고 고쳐나가고자 하는 왕.
이자카. 이교도 오랑캐 국가의 왕자였다가 왕이 되었다. 일부다처제인 국가의 왕가답게 9명의 신부를 두었지만 모두 정치적인 이유 또는 그 사람을 보호하고자 휘하에 둔 것이었고 비올렛만 좋아한다. 이 작품 최고의 키다리 아저씨.
스포
말룸이 이 작품의 최대 적이고 무찔러야할 존재이고 빌런이지만 사실 가장 큰 반전은 말룸이 바로 성녀들이었다는 것이다. 말룸은 허무신이 자기 방식으로 인간들을 사랑하기위해, 즉 인간들에게 종말을 주기 위해 창조신에게 내기를 걸고 창조신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만들어진 존재인데 마치 좀비처럼 말룸은 옮는 존재였다.
그래서 천년동안 성녀들은 말룸과 싸우면서 상처를 입었고 그녀들이 곧 말룸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룸의 특성일 뿐 그녀들이 신을 저주하지 않아야 내기가 이기는데 그녀들은 죽고 시체가 말룸이 되어 저주하면서 이긴것도 진것도 아닌 상태로 내기가 천년이 간 것.
마지막 성녀인 비올렛은 그러나 에드먼드가 끼어들면 안되는 말룸과의 싸움에 끼어들면서 말룸이 되었고 그를 물리치면 저주가 끝나는 것이었다. 에드는 비올렛이 말룸이 되지 않아 신에게 오히러 감사해했고 창조신의 승리로 내기는 끝이났다.
비올렛은 에드를 죽이고 자기도 자결했는데 이때 성혈이 말룸의 기운이 치료된 에드를 살렸고 내기가 끝날때까지 이를 지켜본 성녀들의 기은이 비올렛에게 가 성력을 모두 잃은 비올렛도 살아났다.
허무신은 성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물해주려했으나 비올렛에게 가 그를 살려주고 세상에 더 머물고 윤회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그들의 의사에 혀를 차며 그들을 보낸다.
이 모든 일들을 자비롭게 허락한 허무신을 보며 창조신은 그도 그 나름대로 인간들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어렴풋이 알게된다.
좋았던 구절
*
작은 여자 애는 아무 의사도 없이 끌려왔고 이 다정한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상처받고 외로워했죠. 작고 여리며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거대하고 강한 존재가 그것을 마음대로 망가트리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한다면.”
앤이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존재역시 작고여린 존재에게 파괴된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마땅해요, 아가씨.”
*
Пофалби.
Богослужба.
страв.
찬양하라.
경배하라.
두려워하라.
Спасителот и уништувач на вас.
너희의 구원자이자 파괴자를.
*
그대의 조부에게 받은 인사, 그대에게 돌려드립니다.”
승전한 교황이, 패전한 국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이다.
*
비올렛은 자신의 어깨로 흘러내린 은발의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말룸을 없앴는데 파멸해가는 창조신이 자신의 힘을 거두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몸에 다시 고통이 덧그려졌다. 비올렛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흘린 성혈이 점점 땅에 스며들었다. 비올렛은 최후의 신어를 외웠다.
“крајот”
-종말
새하얀 빛이 폭사하며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 하얀 빛은 한참동안 신의 기적을 보여주며, 세상을 밝게 물들였다. 그 성결한 빛은 모든 창조물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빛이 사그라지고 비올렛은 또다시 에셀먼드의 배 위에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비올렛은 싸늘해져가는 그의 몸 위에서 꿈결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보라색 물결이 그녀의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가득 찼다.
후원에 제비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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