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그 때의 기억과 추억을 모두 끄집어내 과거의 나와 과거에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한 묘미까지 느낄 수 있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저에게 그런 영화였습니다.
어릴적엔 이 영화를 보면서 열심히 하려고 하는 주인공이 구박받을 때 같이 속상하고, 주인공이 깨달음을 얻을 때 같이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했는데 다시 보니 이쪽도 저쪽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기도 하고 혹은 둘다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합니다.
그만큼 나만의 생각이 확고해졌다는 의미겠죠.
이 영화는 기자를 꿈꾸지만 경력이 없어 아무 잡지사에나 이력서를 넣던 주인공이 왠 명품 패션 잡지사 사장 비서 자리를 제의받으면서 본격적인 스토리에 돌입합니다.
주인공은 법대에 갈 수도 있었지만 기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법대를 가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죠.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는 비서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어디서든 일한 경력을 쌓아야 서류라도 통과된다는 걸 체감했으니까요. 그것이 비록 그와는 담을 쌓은 명품 패션 잡지사일지라두요. 당장 연락온 출판사가 거기 뿐이었구요.
그렇게 출근하게된 곳에서 그는 성실함과 무대뽀 근성으로 무섭기로 소문난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에게 서서히 인정받아갑니다. 물론 근성만으로 인정받은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명품을 무시했지만 넌 니가 입은 게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라는 미란다의 도발에 옷차림을 달리하게 되고 런웨이 잡지사 내 많은 패셔니스타들처럼 가끔은 그보다 더 시크하고 나이스하게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미란다도 그를 달리보게 되죠.
재밌는건 소설 및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패션 잡지 런웨이는 실제 존재하는 잡지 보그를 모델로 둔 잡지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앤드리아는 작가 본인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라고 해요.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는 실제 인물 안나 윈투어를 기반으로 창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생동감있는 이야기가 가능햇나 봅니다.
그렇게 점점 미란다와 런웨이에 빠져든 앤드리아는 점점 삶과 일의 균형을 잃어갑니다. 친구들과의 약속, 남자친구의 생일까지 놓치게 되죠.
근데 직장인의 모습으로 이런 스토리를 다시보니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도 어느새 직장인의 때가 덕지덕지 묻었나봅니다.
또 런웨이 일을 성실히 하면서 기자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동아줄도 만나게 되는데요. 그 동아줄이 자꾸 추파를 던집니다. 이에 갈팡질팡하던 모습을 친구에게 들켜버리죠. 친구도 남자친구도 다 앤드리아에게 ‘넌 내가 알던 앤드리아가 아니다’ 말하며 매몰차게 떠나갑니다.
친구는 좀 이해가 가는데 남자친구는 좀더 얘기해볼 수도 있지 않았나 아쉬워요. 친구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잇는 모습을 본거니까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남자친구는 그냥 여자친구 일이 바빠진 거잖아요.
물론 앤드리아의 설명도 부족했습니다. 자기가 경력을 쌓기 위해서 일하는 거니 경력을 쌓을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하거나 어떤 남자친구의 불만과 자기의 무너진 워라밸에 대한 대처 방안을 같의 논의했어야 햇다고 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앤드리아.
앤드리아는 특히 런웨이 편집장인 미란다의 아픔, 연약함, 그런 모습까지 보면서 미란다에게 마음이 쓰여 했는데요. 그런데 미란다가 너는 나와 닮았다는 말을 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립니다(?)
그래도 영화가 끝까지 고구마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모든게 사이다도 아닌 다소 영화적이고 다소 현실적인 그런 면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직장인이 되고나니 달리 보이는 것도 있고 학생일때와 이렇게 생각이 달라졌구나 싶은 점도 있었네요.
옛날 명화를 다시 보는 것. 완전완전 추천합니다!
결말 스포
미란다가 두번째 이혼을 앞두고 심란해하고, 기사를 걱정하고, 그 기사를 걱정하는 이유가 자기의 아이들 때문이라는 푸념을 들으며 앤드리아는 미란다에게 너무너무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사장이 미란다를 자르고 더 싸고 젊은, 그리고 미란다가 싫어하는 재클린을 쓸거라는 얘기에 미란다에게 달려가죠. 이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고 충격도 막고 해결방안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요.
하지만 미란다는 이미 알고있었고 손을 써두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손을 쓰는게 나이젤에게 주겠다고 했던 자리에 재클린을 앉히는 것이었습니다. 나이젤은 미란다가 그 자리를 제안해주어 승낙하고 너무너무 큰 기대에 차 있었는데 갑자기 재클린이 그 자리에 앉게된다는 것을 통보받고 크게 실망하게 되죠.
앤드리아 역시 실망합니다.
그는 미란다에게 재클린에게 잘못하셨다고 말했지만 미란다는 너가 나였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넌 이미 에밀리에게 똑같은 선택을 했다고, 너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니라고 그냥 너는 너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말에 각성한 앤드리아는 바로 자리를 떠나버리죠. 일을 그만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잡지사에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관이 이전 회사인 런웨이에 당신에 대해 물어보니 ‘앤드리아는 내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비서다. 하지만 뽑지 않는다면 당신은 바보다.’ 라고 응답이 왔다며, 전 회사에서 일을 정말 잘했나 보다고 말해줍니다.
(회사는 당연히 합격이겠죠?)
그말에 기뻐하며 앤드리아는 에밀리에게 전화를 걸어 파리에서 받아온 명품을 다 받아달라고 자기는 쓸데가 없다고 말합니다. 에밀리는 싫은 척 좋아하죠.
또 남자친구와도 재회합니다. 남자친구는 보스턴으로 새 직장(레스토랑 부주방장)을 얻게됐지만 거기서도 샌드위치를 만들어줄 수 있다며 둘은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그런데 지도 보니까 보스턴이랑 뉴욕이랑 꽤 멀던데 그런 장거리 연애는 미국에선 흔한일이라 별로 신경쓰지 않는 걸까요? 아무튼 앤드리아는 뉴욕에 있는 회사에 면접 잘 봤다고 했는데도 둘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습니다.
나름 훈훈하게 끝나서 맘에 드는 결말이었습니다.
인생은 늘그렇듯 모든게 다 완벽할 수 없겠지만 나의 가치대로 선택하는 것,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행복으로 그려진 것 같아 그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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