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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 최신영화 추천 후기. 장재현 감독. 검은사제들. 사바하. 관련성 전체 줄거리 등장인물. 결말 스포는 하단에

by 아셀acell 202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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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파묘를 봤습니다. 사바하를 재밌게 봤어서 비슷한 영화일 거라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훨씬 친절하고 자세하고 간결한 영화였습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비유나 은유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컬트 영화로서 주는 어떤 특이한 신비로움 같은 것들도 사바하에 비하면 적은 편이어서 그런 면은 아쉬웠지만 다른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줄거리는 무당 이화림이 LA의 엄청난 부자 재미교포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이 집에는 장자들에게 계속해서 밤마다 괴로워하는 귀신 울음소리가 들리는 귀신병이 물려지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장자는 죽고 귀신의 울음소리는 차남에게 넘어왔습니다. 차남은 세번의 유산끝에 얻은 아들마저 밤마다 우는 것을 보며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음을 짐작하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유명한 무담 화림을 부른 것인데요.






화림은 생의 빛과 어둠을 나레이션으로 언급하며 가끔 편법으로 빛으로 넘어온, 어둠에 있어야 하는 것들, 그것들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다고 방백했는데요.


그리고 차남에게 이 집 전체에 그림자가 보이고 이는 묫자리 때문에 괴로운 조상이 보내는 신호라며 묘를 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왠일인지 가족들은 반기지 않았는데요. 차남은 아들을 위해 강행합니다. 대신 관을 열지 말아달라고 하죠.


하지만 이장을 위해 함께한 지관 김상덕은 묫자리를 보고 묘를 세울만한 곳이 아니라 이장을 하면 묫자리 주인의 한이 엄청나 줄초상이 날 거라고 일을 마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화림은 대살굿을 통해 한을 대신할 동물을 구해 동물에게 한을 보내버리면서 이장을 하자고, 아기를 살리는 일인데 못하냐고 화를 냅니다.





이 일의 대가인 5억도 큰돈이고, 또 곧 결혼시킬 딸을 굉장히 사랑하는 모습을 근근이 보인 상덕은 (아마도) 의뢰인의 아기를 저버리지 못하고 일을 맡기로 합니다.


그렇게 화림이 돼지 다섯마리를 가져와 대살굿을 하고 이 돼지의 피를 묻힌 다섯명의 돼지띠 인부들이 이장을 진행합니다. 이장은 무사히 끝나고 화림과 봉길, 상덕과 영근은 관째로 화장을 희망하는 의뢰인의 요구대로 화장터로 가는데, 이때 이장한 묫자리를 마무리하던 한 인부가 묫자리에서 빨간색과 흰색 교차 줄무늬 뱀을 발견하고 놀라서 뱀을 삽으로 찍어버립니다.


그때부터 다시 걷혀진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요. 비오는날 화장을 하면 망자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 일단 근처 병원에 불법으로 안치하고 하룻밤 보내려던 사이 병원에 자리를 내준 병원 관리자가 관이 좋아보였는지 관 뚜껑을 열어보려고 하다가 그만 관 속에 갇혀있던 혼령이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혼령은 100년동안 자신의 한을 들어주지 않은 자신의 자손들을 다 데려가려고 하죠. 그렇게 차남의 아버지가 죽고, 차남도 죽이려던 사이 일단 화림이 망자를 불러들이는 굿을 통해 망자를 다시 불렀지만, 가두지 못해 망자는 다시 차남에게로 갑니다.





이 사이 차남이 위험함을 알고 상덕은 차남에게 가지만 혼령은 상덕인척 차남에게 전화를 걸어 문앞까지 온 상덕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대신 창문을 열게 해 자신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부분은 드라마 <악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둘다 우리나라 혼령이니까 민속학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결국 차남도 이 조상 혼령 때문에 죽게되는데 조상 혼령이 죽기 전에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고 말하며 죽습니다. 이게 자랑스러워서 말한건지 아니면 뒤늦게라도 나라를 팔아먹었던 것을 반성하며 말한건지 모르겠지만 이를 들은 상덕은 뒷 이야기가 시작되는 발단을 얻게되죠.


그리고 다행히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상황이라 화장을 강행하게 되어 망자는 차남의 아이까지 데려가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대신 망자는 좋은 곳에 갈 수 없었다는 여운을 주죠.





망자는 사실 엄청난 친일파였기 때문에 이는 쌤통이다 싶은 스토리이기도 했지만 친일파였고 관도 좋은 걸 썼는데 왜 이런 악지에 묘가 묻혔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었습니다.


관을 감시하던 관주인의 딸이자 차남의 고모 역시 자기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인 건 알았지만 묫자리를 봐준 사람은 일본인인데 왜 악지를 줬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그렇게 모든 스토리가 일단락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상덕은 영근에게 한 전화를 받게 됩니다. 인부 중 한 사람이 이유를 모른채 앓고 있으니 확인해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부에게 간 상덕은 인부가 병원을 여럿 다녀봤지만 병명을 받지 못하고 아프다는 것과 그때 죽인 줄무늬 뱀이 계속 보인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인부는 자신이 동티난것 같다고 하죠.





동티란 흙을 잘못 다루어서 지신(地神)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앙을 의미하는데요.


동티를 풀어달라는 그의 부탁에 다시 묫자리르르 찾은 상덕은 거기서 기존에 이장한 관 아래 자리에 마치 꽂히듯이 박혀있는 또 다른 커다란 관을 발견하게 됩니다. 박혀있는 모습도 기괴했지만 관이 뾰족뾰족한 쇠사슬로 칭칭 감겨있어 더욱 이상한 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관도 화장해주기로 하고 가져가다가 날이 저물어 그 앞에 있던 보국사에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요. 일전에 차남과 함께 묫자리에 가다가 보국사 간판을 보고 이후에 상덕은 보국사에 한번 가본적이 있었습니다. 보국사 간판에도 풍수지리를 본다는 기호가 적혀있어 신기했기 때문이죠.


보국사에 계시던 스님은 묫자리에 대해 옛날부터 보물이 묻혀있다는 소문이 돌아 도굴꾼이 많았었다고 말해줬었습니다. 이번에는 관을 가지고 왔지만 스님은 역시나 받아주셨는데요. 하지만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간밤에 그 큰 관에서는 무언가가 나와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는 진짜 스포라서 맨 하단에 이어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가 사바하와 뭔가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지점이 보이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카더라 통신으로 감독이 세계관이 통합될까봐 박정민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죠.


사실 사바하 말고 검은사제들도 같은 감독의 작품이지만 전혀 겹치지 않죠. 파묘는 말하자면 민속신앙 스토리고 사바하는 불교, 검은사제들은 기독교 스토리였던 셈입니다.


물론 사바하에도 기독교적인 면도 나오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처도 욕심과 집착을 가지면 사탄이 될 수 있고 사탄도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적인 세계관을 더 많이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불교에서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죠.


사바하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악인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면 파묘에서는 오컬트 본연의 재미를 좀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장이나 대살굿, 풍수지리와 민속신앙의 흥미로운 부분들을 계속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것들은 결국 인간이 오랜시간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꾀와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이를 통해 삶을 도모하고 함께 살아가는 그런 모습들의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기도 했습니다.


또 도깨비불을 보면서 과거에 대한 무서운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네 사람을 보면서 거기에 대항하는 건 불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요.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것에게 다친 봉길이 그것의 지배를 받는 모습도 보였죠.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 대항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그와 맞서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갖가지 수를 내는 인간의 지혜와 용기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검은사제들도 비슷한 맥락이었던 것 같은데요. 천주교라는 종교적 힘을 가지고 대항하긴 했지만 역시 우리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사탄으로부터 인간의 삶을 지키기 위한 여러 의식들을 잘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삶의 가치를 되새겨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오컬트 영화란 사실 잘 모른채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이 삶 자체, 본연의 귀한 가치에 대한 것들을 되새겨주는 힘이 있지 않아 싶습니다. 이런 것들에 무감각하게 살다보면 당장의 힘든 일들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내가 당장 내 앞에 놓인 일들을 해결하지 않아도 회피하더라도 혹은 묵묵히 감내하더라도 그저 이 삶을 살아가는 그것 자체로 충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결말 스포



관 주변에 쳐둔 결계를 피해 하늘로 솟아 관을 탈출한 정체불명의 험한 무언가는 바로 엄청나게 큰 정령이었습니다. 여기서 화림이 정령은 사물에 사람의 혼이 붙어 육체를 가진 것이라고 말해주는데요.


혼령은 해를 끼칠 수 없지만 정령은 가능하다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혼령이었던 차남의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그 할아버지 혼령은 왜 혼령인데 자손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화림은 역시 무당이었던 할머니가 일본 귀신과 관련된 굿을 하는걸 본적이 있는데 일본 귀신은, 한국 귀신처럼 원한 있는 사람들만 해하고 원한을 풀어주면 성불시킬 수 있고, 그런게 아니라 사람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성불시킬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정령은 일본 귀신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죠. 아마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을 통해 화림은 이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방법은 알지 못했죠.





그것은 보국사 보살님과 인근 축사 닭과 돼지를 죽이고 인부까지 잔인하게 찢어 죽였습니다. 또 화림까지 위협하여 죽이려 들었는데요. 봉길이 이를 막아주면서 그것에게 혼이 붙잡히게 되어 위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것은 닭이 울자 주문을 외며 도깨비 불로 변해 사라졌지만 봉길은 치료를 다 잘 끝낸 뒤에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하던 화림은 다른 친한 무당을 불러 도깨비놀이를 하며 그것의 정체를 더 파헤쳐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놀이는 제주특별자치도의 무형문화재 제2호 '영감놀이'에서 유래한 말로 여기서 '영감'은 도깨비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의 무당굿 중 놀이굿의 한 종류로 도깨비신에 대한 굿인 동시에 가면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도깨비가 좋아하는 시루떡 등을 두고 꼬셔 원하는 정보를 말하게끔 하는 것인 듯한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상덕은 보국사에 찾아가 보국사가 사실은 일본이 한국의 맥을 끊기 위해 꽂아둔 쇠말뚝을 찾아 없애던 독립투사들의 본거지였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 도깨비 다이묘가 묻혀있던 곳이 범의 허리, 한반도의 척추 위치임을 깨닫게 됩니다. 계속해서 묫자리의 경도위도가 너무 정확히 비석에 지정되어있던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는 묫자리로 돌아가 땅을 더 파보다가 그날 보국사에서 본 도깨비 다이묘가 그곳에서 자고있는 걸 보게됩니다. 낮에는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그는 그 다이묘가 누워있는 곳 아래에 쇠말뚝이 있을 거라는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상덕의 부탁으로 영근과 화림은 다이묘를 잠시 유인해 쇠말뚝을 찾는 일에 함께하기로 합니다. 화림은 다이묘를 은어를 통해 거대한 나무 앞으로 유인하고 나무 뒤에서 나무가 마치 산신인양 이야기하며 다이묘의 마음을 돌려보려다 실패했습니다.


한편 그동안 상덕과 영근은 열심히 땅을 팠습니다. 하지만 말뚝은 없었습니다. 다이묘는 나무를 빙빙 돌며 화림을 발견하고 도망치는 화림을 죽이려고 따라가는데요. 그러다 화림을 지키던 할머니 영혼의 방어로 화림을 죽이지 못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있던 상덕과 만나게 되는데요. 그는 상덕에게 자신의 부하가 되면 간을 먹지 않고 되지 않으면 간을 먹겠다고 협박합니다. 상덕은 그와의 접촉으로 그 자체가 쇠말뚝임을 알게 됩니다.


차남의 아버지와 함께 활동했다는, 일본에서 왔다는 그 여우 음양사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1만명을 죽이고 신이되었으나 패한 장군의 몸 안에 검을 집어넣고 그를 관 속에 넣어 묫자리 아래 묻어버린 것입니다.





그 자리는 백두대간의 중간. 호랑이 모양인 우리나라의 정확히 호랑이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다이묘는 불이 되기도 하고 강인한 쇠말뚝으로서 불과 금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상덕은 이와 반대되는 물과 나무를 이용하여 물묻은 나무로 그와 맞서는데요.


이 과정에서 정말로 어떤 것에도 쓰러지지 않고 강인하던 그는 물묻은 나무에 맞아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를 처리한 상덕과 영근, 화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상덕은 딸의 결혼식을 보고 영근은 여느날처럼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고 화림은 굿을 하고 봉길은 북을 치고 있었죠. 뭔가 이렇게 강력한 오컬트 현상을 체험하고 처리한 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무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조금은 지루하고 조금은 단조로울 수 있지만 너무나 귀한 일상인 것이죠.





아 그리고 사실 이들의 이름 이화림, 윤봉길, 김상덕, 고영근은 모두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투사 분들의 이름인데요. 차 번호도 각자 해방연도 0945 해방일 0815 삼일절 0301 이고 보국사도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의 보국이라는 이름인 점, 보국사를 지으셨다는 주지스님의 이름 ‘원봉’도 독ㄱ립투사 분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감독이 강력한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이 영화를 기획한 것이 보이는 것 같아 재밌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며 단순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


이것은 어쩌면 감독의 다른 영화들까지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과 집착, 그로인해 누군가를 방해하고 억압하려는 마음 없이 함께, 같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살아간다면, 비록 때론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가 바라는 신의 구원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가 느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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