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을 보면서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내가 하는 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거나, 내가 하는 일이 뭔가 크게 어디에 기여하는 일이 되거나, 막 빛나는 일이 아니어도, 그 일이 누군가를 갈취하고 짓누르는 일만 아니라면, 그저 열심히, 성실히, 묵묵히 이 길을 가도 되는거구나. 그렇게 가다보면 내게 맞는 일이 되는 거겠구나.
영화는 택일이와 상필이가 털털털 달리는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조금은 지루하게 털털털 달리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시작할 때는 왜 이렇게 지루한 장면을 오래 보여주나 헀지만, 영화를 다 보고 떠올리니 찡한 장면으로 남는다. 마치 느리고 잘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하지만 굳건하게 응원하는 느낌이었다.
장면이 바뀌어 택일은 엄마 정혜의 손에 뺨을 맞고 파출소에서 쓰러지는데 정혜는 왕년에 배구선수였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연은 나오지 않지만 배구선수였던 정혜는 홀로 택일을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고있었다. 어렵게 자금을 모아 토스트가게도 내서 아들 뒷바라지를 다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택일은 그런 엄마가 답답하기만 하다. 엄마가 꿈도 접고 이렇게 된게 다 자기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도 든다. 하지만 자신은 무엇하나 잘하는 것 없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는 자퇴한 미성년자일 뿐이다.
동네를 뜨겠다는 꿈을 실현해 혼자 아무 계획도 없이 군산으로 내려가서 중국집 배달일을 하며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택일은 땀흘려 돈을 버는 경험도 하고 거석이 형을 통해 어른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서서히 배워간다. 그리고 여전히 싸움은 못하면서 성질은 나빠서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다니지만 곤경에 처한 경주도 구해준다.
이와 반대로 택일의 불알친구 상필은 아는 형의 꾀임에 넘어가 사채 이자를 받아내는 일에 뛰어든다. 처음에는 쉽게 큰돈을 벌 수 있어 좋았지만 점점 이 일의 실상을 보게되고, 마침내 불알친구 택일의 어머니, 정혜에게까지 사장님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갔음을 인정한다. 사실 그전에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인정할 계기가 없었는데 정말 끔찍한 상황이 눈에 닥치고 나니 사그라져들던 양심이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현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영화 전반에서는 택일과 상필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가 어떤 삶을 걸어가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었다. 둘다 간절히 가고싶은 길은 없었고, 잘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둘다 당장 각자 몸뚱아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뛰어들었는데 하나는 배달이었고 하나는 사채 수금이었다.
상필은 수금을 통해 맛본 돈의 맛에 빠져들었다. 쉽게 돈을 벌었고 돈 쓰는 맛은 즐거웠다. 이 좋은걸 친구와 나누고싶어 택일에게도 계속 함께하자하였다. 하지만 택일은 그에 혹하지 않았고 그만두라고 계속 얘기했다. 난 이런면에서 택일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택일은 상필에게 늘 너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고 살라고 했다.
택일에게는 어떤 자신도 형언할 수 없는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싸워야 할 때에 싸움도 못하면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깡은 있었지만 그 깜을 사채 수금하는 일 같은 것에 쓰지는 않았다. 자신때문에 엄마 팔자가 꼬였다고 생각하고, 그런 삶을 선택한 엄마에게 늘 짜증을 내고 삐딱하게 굴었지만, 첫 월급을 모두 엄마에게 갖다줄만큼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다른 등장인물도 다들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다가 교차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였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듯 했다.
누군가는 어둠의 길을 걷다가 다시 제대로 살고싶어 그 길에서 도망쳤다가, 마무리를 하러, 자신의 지난 과오의 책임을 지러 돌아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상실의 아픔을 다른 아픈 이를 사랑하고 응원함으로써 함께 이겨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와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그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내기도 하는, 그런 영화속 모습들을 보면서, 마무리로 가면서는, 나쁜 일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다들 각자의 모습대로 묵묵히,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상필을 사채 수금의 길로 인도했던 동화는 초반에는 살짝 발을 빼고 싶어했던 상필에게 다들 이렇게 적응하며 사는 거라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상필처럼 자신도 수금의 길에서 나와 치킨집을 차리고 치킨을 배달하다가 상필과 마주치고서, 해도해도 괜찮아지지 않았다고, 이 일도 힘들지만, 이 일은 하다보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말하는데, 동화의 이런 변화가 주는 울림이 또 있었다.
고등학교를 가든 가지 않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삶을 살든, 인간답게만 살아간다면, 다 괜찮은 것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목표를 향해, 성공을 향해, 맹목적으로 고개를 향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지만 가지 않아야 할 길을 늘 경계할 수 있기를. 새삼 다짐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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