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케언즈워홀 사진을 가지고 포스팅을 쓰려고 한다.
사정이 있어 그간 집중해서 워홀 사진 올리고 진지하게 끄적거릴 자신이 없어 미루고만 있었는데 이제 사정이 얼추 마무리 되었다. 물론 이 사정이 해결되니 다른 사정이 생기는 것이 우리네 일상... 여러 다른 고민거리가 밀려오고 있지만.
그리고 코로나가 좀 진정되야 이런 컨텐츠가 정보성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별로 정보성이랄 것도 없고 차라리 대리만족, 대리체험 같은 느낌의 글이니 지금 써야 더 잘 읽힐것 같기도 하다.
이날은 어학원에서 친해진 멤버끼리 케언즈 비치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했던 날이었다.
그래서 다같이 스미스필드 쇼핑센터에 가서 술도 저렇게 많이 사고 술을 담궈둘 바구니는 누가 가져왔었고 얼음도 샀다.
그리고 고기 야채 휴지 은박지 등등도 구매했다.
사실 학원에서는 매주 졸업생이 나오기에 매주 졸업파티로 금요일에 바베큐 파티를 하는데 나는 같이 입학한 동기들 말고는 그닥 친해지지 못했고 안친한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파티를 갈 용기가 없었다.
그런 소극적임, 누군가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다 내려놓고자 간 곳이었지만 막상 초반에는 타지여서인지 오히려 더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끼리 바베큐 파티를 하기로 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나도 드디어 주말마다 애들이 한다던 바베큐 파티를 해보는구나, 하고.
가서 보니 분위기는 생각보다도 더 끝내줬다. 석양지는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고기 맛이란. 여럿이 있어서 무섭지도 않았고 (인원이 적었으면 좀 많이 캄캄한 편이었어서 무서웠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모두가 함께 즐기는 분위기 뿐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모든 걱정은 뒤로 하고 현재를 즐기는 시간. 그전까지 한국에서는 많이 가져보지 못한 시간이었고, 가진다고 해도 아주 잠깐 가지고 금방 일상으로 돌아와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는데, 호주라는 비 일상에서 이런 시간을 가지니 정말 오롯이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여행을 가서 또 여행을 가는 기분.
고기는 처음에는 요리쪽 전공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굽다가 다같이 구웠다. 누군가가 버섯을 태워버렸지만 그 마저도 재미있었다. 원래도 친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이렇게 파티를 할때마다 한층 더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중에 많은 친구들과 여전히 인스타로 연락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인스타로 안부 묻는건 친분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떨어져있고 문화가 다른 우리가 그래도 연락을 이어가고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친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사귀고 있던 친구들 중에 헤어진 친구도 있고, 이때는 안사귀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사귄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도 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관계가 난 참 좋다.
케언즈는 거의 모든 해변에 이런 무료 바베큐 판이 있다고 보면 된다. 불켜는 버튼을 클릭하면 일정 분(minite) 동안 판이 가열되고 그 사이 구워야 한다.
보통 한테이블에 두개의 판이 있어 계속 끊이지 않고 먹으려면 하나에 굽다가 다른 하나도 켜서 깜박거리고 꺼지면 안 꺼진 곳에서 굽다가 다시 꺼진 곳 켜고 굽는 식으로 번갈아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그냥 먹기 좀 찝찝하다면 은박지를 사다 깔고 구워도 되는데 정부에서 매일 잘 닦아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엔 깔고 먹다가 뒤엔 그냥 먹었다.
그리고 불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집게 가위 휴지 등등은 다 챙겨가야 한다. 먹을 고기나 야채들도 물론 사야하고. 물은 케언즈가 워낙 그냥 수돗물 먹어도 된다고 그래서 이런 바베큐 시설 주변에 물 나오는 곳이 있고 아래와 위로 구분되어 있어서 물론 똑같은 물이겠지만 그래도 기분 상 윗 물을 마시고 아랫 물로 씻을 걸 씻고 했다.
윗 사진이 굉장히 술냄새가 나는 듯 해서 민망하지만, 어떻게 보면 신나 보이기도 한다. 이 사진에 나온 인원보다도 두 배정도 더 많은 인원이 함께한 파티였다. 정말 시끌벅적. 영어로 소통하다가 같은 나라 사람들과는 모국어로 소통하다가 하는 분위기였는데, 그게 뭔가 더 나를 들뜨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정말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해외에 있구나 하는 느낌. 해외에 있으면 어찌됐건 뭔가 이방인 같고, 안정적이지 않아서 싫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는 그런 느낌이 좀 맞는 것 같다. 다들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고, 때로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불리한 일도 있을지언정, 뿌리내리지 않은 곳에서의 그 자유로움이 나는 좋았다. 아무것도 나를 옭아맬 수 없고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해 내 삶을 좌우하는 느낌. 그 느낌 때문에 여전히 나는 코로나가 풀리기를 기대중이다.
다음날도 휴일이어서 친구랑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물론 학원 근처 카페는 몇 없고 그마저도 은근 많이 걸어야 해서 땡볕에 걷느라 좀 힘들었지만 타먹는 커피가 아닌 내려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을 그 10분 걸음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카페도 왠지 어느날은 안가본 카페, 정말 예쁜 카페 가보고 싶은 날이 있는데, 그만한 선택지가 없어서 아쉬웠던 와중에, 못가봤던 카페를 발견해서 이날 도전했다.
진짜 이쁜 카페였다. 분위기도 좋고 가게 내부도 너무 깔끔하고 예쁘고, 서비스도 음식도 커피맛도 흠잡을 데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spc 랑도 은근 가까웠다. 원래 단골이었던 트리니티 쇼핑센터보다 훨씬 가까워서 여기를 더 빨리 찾지 못한게 한이었다. 케언즈 spc에서 있는 시간이 다 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점도 아까웠다.
여기에 레쥬메(이력서)를 내볼까도 생각했는데 어학원 수업이 종료되면 꼭 시티에서 살고싶었고, 투잡, 쓰리잡 하려면 시티에서 머무는게 효율적이고, 교회도 다닐 생각이었고, 시티 수영장도 자주 가고 싶었기 때문에 접었다. 사실 어학원 다니면서도 일할 생각이 있었다면 미리 찾아서 레쥬메를 내봐도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사실 아직까지도 돌아다니면서 레쥬메를 내고 영어로 면접을 보고 영어로 손님을 맞는게 심적으로나 영어 실력으로나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더 많이 도전해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리고 그래도 여러가지 도전해본 것은 기특하고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더 용기를 얻고 또 많은 경험을 얻고 돌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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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또 기숙사 밥을 먹었다.
점심, 저녁은 항상 맛이 별로였기에 이날은 누군가가 가져온 고추장에 샐러드 야채를 비비고 이날 나온 고기반찬도 비벼서 비빔밥을 자체적으로 해먹었다. 아닌가, 내 고추장이었나. 가물가물 하지만 아무튼 기회만 닿으면 이렇게 나오는 밥을 어떻게든 맛있게 먹어보려고 노력했었다. 식사를 위한 스탭을 따로 뽑지 않은게 진짜 너무 아쉽다. 밥이 정말 중요한 나같은 사람도 있고, 꼭 나같은 사람이 아니어도 다들 늘 비슷비슷한 반찬, 그리고 고기 자체도 너무 질긴게 조리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런 점이 보완되지 않은 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게 개선되지 않으면 더 발전하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주말을 보낸 한 주가 있었다.
언제나 거의 예뻤던 케언즈 하늘처럼, 돌아보면 사실 케언즈에서의 모든 추억이 당시에는 답답한 느낌도 있고, 막막한 심정도 있었을지언정, 이제는 너무너무 예쁘게 내 안에 남아있다. 이런 예쁜 추억을 가질 수 있게 워홀 길을 선택해준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물론 돈을 다 쓰고 돌아온 것, 충분히 영어나 여러가지 더 좋은 것들을 얻어오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지금 얻은 것들만 해도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것들인지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또 더 성장시켜서 더욱더 그 때의 시간들을 후회없는 시간들로 만들고 싶다.
찰나의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 선택이후에도 꾸준히 그것들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성장시키고 개선해나가면서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거기 가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들도 있지만, 또 다른 걸 얻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워홀을 선택했고 그곳에서만 얻어올 수 있는 것들을 얻어왔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갖지 못한 것만 두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부분들에 대해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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