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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법 : 내가 좋아하는것, 싫어하는 것을 많이 알고, 세상 누구보다 나에게 관대해지기 "나는 ! 그럴수 있어!"

by 아셀acell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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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힘든 일들을 좀 겪다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그중에서 제일 맘에드는 것은 내가 진짜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나를 잘 지키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들을 겪었을 때, 내탓을 하거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과 제대로 맞서지 못해 결국 내게 상처를 주거나, 할말을 하지 못하고, 결국 내가 힘든 일들을 다 감당하는 길을 갔을 텐데 지금은 내가 나중에 힘들지 않도록, 나를 위해 스스로 맞서 싸우고, 절대 내탓은 하지 않으며, 나를 가스라이팅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구분해내고 그 사람들을 욕한다. 

 

예전에는 맞서지 못하고, 싸우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나약한 내 모습을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구보다 잘 참고, 잘 견디는, 그리고 남에게 상처주지 못하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러는 동안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고통을 딛고 즐거움을 찾은 사람들은 결코 내 고통을 돌아봐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게 잘못됐음을, 나는 나를 지켜야함을, 나밖에 아무도 나를 지킬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더 시간이 지나서였다. 외롭고 낯선 먼 타지에서 전에없던 자유롭고 즐거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나를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시선과 기준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배워갔다. 그전에도 물론 마냥 조용하고 내성적이기만 한 성격은 아녔지만, 그래도 전에는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쓰고, 사회적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무던히 애썼다면, 이제는 그런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아직도 그런것이 중요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이기적인 말들에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기준이라면, 내가 따라야할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면. 되려 내가 그 기준을 지키는 것이 나를 짓밟는 일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하니까. 나에게 그런 기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바로 나를 짓밟으려는 사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아직도 많이 흔들리고 때로는 아파하지만, 그래도 제법 단단해지기까지 여러 경험을 축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단단해지는데 도움이 되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일을 알고 또 내가 싫어하는 것, 싫어하는 일을 아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많이도 거절당했고, 거부당했고, 또 내가 싫어하는 것을 많이도 강요받았다. 그럴때마다 혼란스럽고 속상했던 것은 좋아해서는 안될 것을 좋아하는 것 같고, 싫어해서는 안될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일이 생기면, 코웃음을 치며 미간을 찡긋한다. 왜? 누구맘대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안다는 것은, 남의 기준과 강요에 흔들리지 않는 지지대가 생기는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날 지탱하고 누군가 그런걸 좋아하면 안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지 않는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전이었으면, 좋아하면 안된다고? 왜? 정말 안되나? 하고 혼란스러워 했을 테지만 이제는, 그저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지나간다.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더 최악이다. 초등학생 떄 이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더 적극적으로 싫어하는 반찬을 몰래 버릴 여러가지 방법을 구상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짓밟는 행위가 아닌 선에서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나 혼자 그를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다. 

 

 

또 하나. 단단해지기 위해 해야할 것. 나에게 절대적으로 관대해지는 것이다. 양희은 선생님의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많이 적용하는 것. 내가 좀 부족해도, 내가 좀 실수했더라도 상관없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누구나 실수한다. 나는 내가 가장 애틋하다는 '또 오해영'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 나는 세상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알기에.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아는 내가 내게 말해주는 것. 그럴 수 있어. 실수 할 수 있고 부족할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했고, 수고했고, 자랑스러워. 더 쉬어야 하고, 더 행복해야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분은 정말 많은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정말 자기도 모르게 자기 스스로를 혹사하고, 채찍질하고, 부족하다고 자책하며 살아가기에 꼭 짚어보라고 말해주고싶다.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는 이야기, 위로가 되지 못하는 생각들을 하고있지 않은지. 세상에 가장 가까운 내편은 바로 나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 나. 그런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못했다면, 이순간 꼭 안아주며 말해주자. 수고했다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앞으로는 더 사랑하고 니맘 다 알아주고, 네 편이 되어주겠다고. 

 

 

단단해지면서 더 너그러워지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이미 이전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왔고 성격상 모든걸 끌어안으며 단단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부딪히는 인연들과 안볼 수 있다면 안보려 하지만 봐야한다면 나를 제맘대로 하려는 행동들을 쳐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매일 쌈닭같은 모습으로 살고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닌 사람들과는 마음의 거리를 두고 그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으며, 그 사람들의 잘못을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사람들의 가스라이팅에 놀아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나를 대하려 하면 분노할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몸에 뿌리박힌 동방예의지국, 그놈의 예의 때문에 꼰대같은 아저씨들의 횡포에 맞서는 것은 두려워하고, 가끔은 내가 잘 살고있는건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심장이 벌렁벌렁한데도 나를 지키기 위해 아저씨의 횡포를 물리치고, 힘들땐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고, 스스로에게 사주면서 이겨내는 나를 보면, 적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확신은 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런 행복을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주에서 하나뿐인 우리니까. 꽃보다 별보다 아름다운 우리니까. 우리는 있는 그대로 가장 우리다운, 그래서 아름다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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