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 끊고 제일 먼저 본게 로키.
완다비전이랑 고민하다가 로키를 먼저봤다. 완다비전은 왠지 좀 심각할 것 같아서. 완다의 그 상실감. 슬픔. 아픔을 감당할 기분이 아니어서.
로키는 워낙 장난의 신이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니까. 가볍게 보려고 선택했다. 하지만 설정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시간선을 헤집은 로키를 붙잡은 TVA 라는 단체는 시간선의 분기를 바로잡기 위해 아이와 어른을 구별않고 분기를 만드는 사람을 모두 잡아다 판결에 따라 가장 심한 경우 소멸 시키는데 로키는 이 "바로잡는다"는 의미 자체에 의문을 가졌다.
이런 부분이 굉장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옳게 돌아가야 하는가. 그 옳음의 기준은 어디서 오는가. 안전함을 위해 모든 새로운 것들을 막는 것이 좋은가. 가벼운 영화를 가장한 철학의 끝없는 질문의 굴레에 던져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로키가 로키를 쫓는 것. TVA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타임키퍼를 찬양하는 것. 하나하나 허투루 넘겨지지가 않았고 작가도 이 모든 떡밥을 종국에는 다 회수를 한다. 그래서 보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아래부터는 스포가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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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가 로키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그로인해 분기가 급격히 달라질 뻔 했다는 설정 등 기발한 설정이 많았다. 사실 로키는 그리고 뒤에 나오는 로키들도 다 조금씩 일종의 자기혐오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끊을 수 없을 것 같은 자기혐오의 고리를 끊어낸 것. 그 방법이 사랑이라는 것도 맘에 들었고 그로 인해 폭발적인 (거의 수직에 가까운) 분기가 생기는 것도 좋았다.
TVA 는 그런 분기를 있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취급했지만 뒤로 갈 수록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저 또 하나의 길이 생기는 느낌이어서 그 어떤 이상한 선택이어도 결국 또 하나의 길이 되는 것이라는 메세지 같았다.
물론 마지막에 여자 로키는 남자 로키가 아닌 복수를 선택하지만 그건 우선순위의 문제지 여자 로키가 남자 로키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본다. 또 여자 로키도 복수가 성공했으니 이제 우선순위가 없어진 셈이라 좀더 사랑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젠 남자 로키에게 우선순위가 더 높은 일이 생긴 것 같아서 그렇게 안될 것 같긴 하다. 이부분은 시즌2로 넘겨져버리고 마무리가 돼서 아쉽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사실 TVA 직원들은 사람들을 잡아다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선의 맨 끝으로 보내는 거였다. 물론 거기에는 모든 시공간을 먹어버리는 괴물이 있어서 거기에 가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있는데, 바로 로키들이다. 온 우주의 로키들이 심지어 악어 로키까지 나타나 서로 그 마지막 시간선에서의 왕좌를 탐하는데 그걸 보고 주인공 로키는 좌절하지만 그곳에서 절체절명의 순간, 또 그를 도와준 것도 로키였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그 로키는 처음에는 여자 로키를 잡기 위해 로키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TVA 직원에게 이용당했지만 나중에는 그 여자 로키와 함께 TVA 직원들이 신봉하는 타임키퍼가 숨어 사는 곳까지 닿게 된다. 타임키퍼는 의외로 위트있는 사람이었는데 다만 자신과 같이 차원을 넘는 다른 우주의 자기자신 여럿과 싸우면서 각자 자기네 시간선만을 위해 행동하느라 시간선이 엉망이 되었던 과거가 있어 시간선의 분기를 반드시 컨트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무언가를 영원히 컨트롤할 수 없다. 이런 영화를 볼때마다 느낀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거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 동물이나 외계인 조차도 사람과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된다. 그러니 영화속 인물들은 누구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절대 사람을, 그리고 인생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서핑하듯 즐기며 그 파도에 먹히지 않고 혹은 먹혀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알아야 할 뿐이다. 물론 그러기 쉽지 않다. 컨트롤 안되는 파도는 때로는 사정없이 몰아치며 나를 죽이려는 듯 보이고 세상을 멸망시킬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도는 바다를 멸망시킬 수 없다.
드라마 로키는 시즌2를 의심케하며 마무리되었다. 여자 로키가 타임키퍼를 죽이자 그전에 현실로 밀렀던 남자 로키가 도착한 세상이 어쩐일인지 타임키퍼를 로브 쓴 어떤 신성한 존재로 섬기던 세상에서, 그 얼굴이 완연히 공개된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혹은 타임키퍼가 없는 세상은 이제 또 바뀌었고 멀티버스가 가능해졌다, 정도를 알리기 위한 열린 마무리였을 수 있다. 엔드게임에서 로키는 죽었으므로.
하지만 또 시간선 마지막 세상에서의 로키들을 보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고 죽었어도 다른 우주의 로키들은 살아있으니(물론 대부분 젊어서 죽을 운명이었지만.. 다양한 분기선이 가능해졌으니 모를일이다) 그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여러가지 분기선을 상상해보니 벌써 재밌다. 나보다 훨씬 유능한 마블의 작가들이 로키를 아주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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