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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드라마

📙 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재미있는 책 추천. 줄거리. 스포. 후기. 리뷰

by 아셀acell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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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는 추리가 흥미로워 금방 읽은 책. 추리소설 작가가 보복살인을 추리하는 내용이라 내용 자체는 추리소설 중에 그리 놀랄 만한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용이 경악스러웠다. 

 

안나 카레리나의 소설 첫문장도 생각났다. 불행한 가정의 불행은 행복한 가정과 달리 다 제각각이라고. 맞는말이다. 누가 알았을까. 이 사랑이 넘치는 가족의 실체를. 

 

 

 

 

요리코를 위해

 

deg.kr

 

 

/ 줄거리 / 

 

어느날 번듯한 집의 조신한 외동딸이었던 요리코가 공원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요리코의 집은 번듯하고 사랑이 넘치는 집이지만, 한가지 아픔이 있다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불구가 된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 그리고 사고로 어머니는 뱃속의 아들을 잃었고 요리코는 이 집안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그야말로 하나뿐인 딸, 요리코를 잃은 요리코의 아버지는 요리코를 그대로 떠나보낼 수 없어 요리코의 복수를 다짐한다. 요리코를 죽인 것으로 의심되는 살인자는 요 근래 공원에서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연쇄살인범. 

 

하지만 아버지는 어쩐지 석연찮은 것이 있어 혼자만의 추리를 감행한다. 그리고 요리코가 임신 4개월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충격에 빠진 아버지는 자신의 마냥 아기같던 요리코가 임신할리 없다고 믿고 싶었지만 산부인과에서 진단서까지 떼어줄만큼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기의 아버지를 추적해보니 요리코의 여학교 교사였다. 그렇다면 저 자가 요리코를 죽인 것은 아닐까. 교사의 뒤를 쫓던 아버지는 여러가지 정황 상 교사가 범인임을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사에게 접근해 제압하는데 성공, 마침내 교사의 입으로 자신이 죽였음을 시인하는 자백을 받아냈다. 

 

 

그는 마침내 사랑하는 딸 요리코를 죽인 진짜 범인을 제 손으로 죽이고 자신도 이 모든 것을 수기로 남긴 뒤, 자살한다. 하지만 남편의 근래 추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내가 자신의 거동을 도와주는 도우미에게 연락한 덕분에 요리코의 아버지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살아나게 되었다. 

 

한편, 여학교 교사의 스캔들로 학교 평판을 잃을 수 없었던 여학교 이사장은 믿을만한 추리소설 작가 린타로를 고용해 이 사건을 여학교 교사의 스캔들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 풀어나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린타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사실 진실만을 찾아내고 세상에 알릴 마음이다. 

 

그렇게 사건을 따로 추적하던 린타로는 사실 이 사건에 숨겨져있던 또 다른 진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 스포 / 

 

위에서 얘기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흥미롭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였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이 반전은 스포를 정말 꼭 당하고 싶은(?) 사람만 아는게 좋을 것 같아서 따로 분리하였다. 

 

요리코를 임신시킨 것은 소설 내용 중에서 아마도 여학교 교사가 맞을 것이라고 얘기된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명확한 사실은 아니었다. 왜냐면 요리코는 그 아기가 아버지의 아기이기를 바라며,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5월에는 아버지가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 틈을 타서 아버지와 관계를 가지려고 했다. 아버지는 기억이 끊겨 명확하진 않지만 끝까지 가지 못한 것으로 기억하고, 또 요리코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그 여학교 교사와도 관계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아마도 요리코의 아이는 여학교 교사의 아이일 확률이 70%, 요리코 아버지의 아이일 확률이 30%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요리코가 아버지의 아이를 갖고싶어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계속 거부당하면서 비뚤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요리코의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게 된 정황이, 어린 요리코가 신호등 앞에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가는 바람에 차와 부딪힐뻔했고, 임신 중이던 엄마가 요리코를 구하러 뛰어들었는데, 요리코는 덕분에 타박상만 입고 살았지만 엄마는 차에 치여 붕 떴다가 떨어지면서 아이도 잃고 하반신도 잃게 된 것이었다. 

 

 

요리코의 엄마를 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뜨겁게 사랑했던 요리코의 아빠는 요리코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위해 행복한 가정인척, 요리코를 사랑하는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요리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요리코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갈등에 힘들어하는 동창 남자애의 이야기를 내 일처럼 들어주었고, 동창이 느끼기에도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머니가 불구가 된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항의할 수 없었다. 그저 동창에게 말하는 척 자신을 구슬리고 위로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리코의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과 죄책감은 점점 기이한 형태로 자라났다. 성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자란 요리코에게는 엄마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고 했다. 요리코가 엄마의 젊을 때 사진을 많이, 자주, 오래 봤다고 하니 일부러 엄마처럼 더 꾸몄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아이를 갖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가 술에 취한 틈에, 어머니를 대신하는 것 혹은 자신으로 인해 죽어버린 동생을 자신이 낳겠다는 것 뭐가 됐든 기이한 목표를 가지게 된 요리코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가지고자 한다. 하지만 아마도 실패하고 학교 교사와 관계를 가지고 임신을 성공한뒤 아버지에게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혹은 정말로 아버지의 아이를 가졌을 수 있다. 

 

아무튼 이 말을 들은 요리코의 아버지는 혼란스러웠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펼쳐졌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불구로 만든 요리코가 심지어 자신과 아내 사이를 이간질 시키려고까지 든다고 생각했다. 참아왔던 증오심이 폭발했고 감당할 수 없는 일 앞에 이성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요리코를 목졸라 죽였다. 그 과정에서 요리코의 고양이가 요리코의 아버지를 공격해 고양이도 죽였다. 

 

추리소설 작가 린타로는 처음에는 마당에 아무렇게나 묻혀있던 고양이를 통해, 그리고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는 요리코 어머니 도우미의 말을 통해 의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수기에는 고양이 밥을 줬다고 되어있었기 떄문. 그리고 수기가 심적으로 매우 지쳐있을 날에 이상하리만큼 길게 쓰여있고, 범인을 눈치채 흥분해서 길게 쓸법한 날에는 또 짧게 쓰여있는 등 어딘가 어색한 수기를 통해 점점 요리코의 아버지를 의심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병원에서 눈을 뜬 요리코의 아버지에게 진실을 듣고, 또 요리코의 아버지에게 그가 몰랐던 진실을 하나 말해주고, 요리코 아버지가 다시 투신자살 하는 것을 방조한다. 

 

 

아버지가 몰랐던 진실은 바로, 요리코가 왜 갑자기 횡단보도에서 뛰쳐나갔나, 하는 부분이다. 

 

요리코가 뛰쳐나가고, 요리코의 어머니가 요리코를 구하고, 대신 치이고 하는 것을 요리코의 아버지도 봤다. 그가 우연히 그 신호등에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코의 어머니의 사고 직후 아버지가 달려왔다는 것을 린타로는, 요리코 어머니를 친 운전자에게 들었다. 그리고 린타로는 말한다. 아마 요리코는 먼저 그 신호등에 있던 아빠를 봤을 거라고.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버린 거라고. 

 

그때에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요리코는 그저 아빠의 사랑을 갈구한 어린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요리코의 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또 자살을 한다. 린타로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린타로는 창문을 열어준다. 요리코의 아버지는 린타로에게 처음은 요리코를 위해, 두번째는 아내를 위해 죽는거라고 아내에게 전해달라고 한다. 요리코의 아버지는 투신자살하고 마침내 죽기에 성공한다. 

 

린타로는 요리코의 어머니를 찾아가 이말을 전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이는 자신을 위해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동요하지 않는다. 린타로는 문득 자신을 ‘관념의 괴물’이라고 표현한 그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계획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알 길 없이 린타로는 그 집을 빠져나온다. 

 

 

 

요리코를 위해

 

deg.kr

 

/ 후기 리뷰 / 

 

뭔가 일본 특유의 쎄한 분위기가 담긴 소설이었다. 아빠의 사랑을 갈구하다 못해 관계를 가지려는 요리코. 요리코를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도 자살하는 아버지. 모든 것을 알고있는 것만 같은, 전체를 조망하고 조종하는 듯한 어머니. 

 

참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건 소설이지만서도 현실에서도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사실과 상황들이 모여 어쩔 수 없는 증오와 폭력이 생겨나는 일들이 종종 있어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는 우연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도 하지만 우연히 누군가를 증오하게 되기도 한다. 둘다 너무나 작은 일 하나로 시작되거나 심지어 오해로 시작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해로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나, 오해로 증오하게 되면 너무 불행해진다.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그만큼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라,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 요리코도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도안되는 일을 벌였고, 그건 일종의 복수극이기도 했을 것이다. 요리코의 아버지가 자백한대로, 어머니와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자 하는 마음도 정말 무의식 중에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파멸이었다. 아버지만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망가트리고, 또 아버지로부터 살해당하고,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드는. 

 

 

우리는 왜 이런 죽고 죽이는 증오를 계속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서로를 사랑한다는 신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코가 만약 아버지가 어머니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지만, 아버지로서 자신을 사랑하고 거부할 수 없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렇게까지 비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아버지도 요리코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이였기에 절대 어머니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라거나 말썽을 부리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신뢰했다면 요리코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뛰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먼저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신뢰가 없다.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영원히 사랑해줄 거라는. 미워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리고 그걸 표현하더라도 기저에는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미워하는 마음은 애초에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마음이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우리는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나를 비굴하게 만들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혹은 같은 미움, 증오하는 마음으로 대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좀더 성숙해질 타이밍이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채집에서 농경으로,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3차 산업으로 진화하고 발전해왔던 인간은 이제 모든 차별과 혐오를 사랑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발전했다. 우리는 편리하게 생활하고 있고 더욱 편리해질 수 있는 기술력도 갖췄다. 하지만 편리하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증빙이 되는 현대사회를 우리가 살고있다. 이전보다 늘어난 듯한 소외계층과 박탈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 박탈감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 혐오로 인한 폭력. 

 

결국 우리가 진화해야할 다음 단계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신뢰하는 인간, 단계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 모든 폭력과 혐오를 멈출 수 있다. 이 모든 차별과 소외를 막을 수 있다. ‘나’만 잘 살아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잘 살아야 한다. 이것이 모두가 공평하게 가지는 공산주의를 표방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불공평한 출발선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베네핏을 허락하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넘어진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가지는 쪽으로 사회와 법칙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물론 요리코 가족의 이야기가 이런 소외와 차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떤 사랑의 부족이라는 측면에서 좀더 다른 차원의 이야기까지 후기에 한번 담아보았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랑에 대해, 미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결국 아빠 때문에 뛰쳐나갔던 딸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된 엄마, 그로인한 아빠의 비뚤어진 원망, 그로인한 딸의 비뚤어진 욕망(사랑받고싶은), 이 모든 것들이 참 슬프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 기억에 남는 구절 /

 

너 요새 거울로 네 얼굴 본 적 있어? 마치 논리의 자기 중독이라도 일으킨 낯짝이야. 아주 안 좋은 징후지.

 

이제는 알겠다. 그는 어떤 쪽에도 속해 있지 않다. 자신의 특권을 과시하기 위해 정보를 굴리고 있는 것뿐이다. 누군가의 편에 들러붙는 행위도 그 일부에 불과하다. 배신도 신의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그저 비대해진 자아의 자기 선언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연약한 새에게 눈길을 기울이는 상냥함과 어둠 속에서 발톱을 세우는 고양이의 공격성을 아끼는 심리는 전혀 모순이 아니라고 린타로는 생각했다. 17세 소녀의 내면에는 그 두 가지가 어엿이 공존할 수 있다.

 

린타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린타로의 추리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그녀의 압도적인 관념의 궁전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티끌에 불과했다. “실례했습니다.” 그 말만을 남기고 린타로는 뒤돌아섰다. 다시 리드미컬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그녀의 손가락 밑에서는 사랑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직조되고 있을 것이다. 더럽혀지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린타로는 한기를 느꼈다

 

 

 

 

 

 

 

 

 

 

 

 

 

 

 

 

 

포스팅은 일부 상업광고가 포함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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