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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드라마

선과 악의 학교. 줄거리. 결과. 스포. 리뷰. 넷플릭스 영화. 페미니즘 영화?

by 아셀acell 202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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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신작 영화중 순위에 있어 보게된 선과 악의 학교는 동화 속 선과 악의 캐릭터들을 육성하는 마법 학교에 가게된 현실 사람인 두 절친이 겪게되는 모험 이야기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처럼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이 각종 사건 사고를 겪는데 그게 이 영화 속에서 하나의 동화가 될 것처럼, 쓰여지고 이런 설정들이 있다. 

 

동화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 가장 기발한 스토리라고 느껴졌는데 와중에 페미니즘적 요소도 있어서 흥미롭게 봤다. 요즘 영화중에는 이런 내용이 왕왕 등장하는 것 같아서 그래도 확실히 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이 대중화 되고 있다는 게 느껴져 힘이난다. 

 

 

주인공 소피와 아가사

 

둘의 성격은 대조적이지만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그 힘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구박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피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말해줬던 친엄마의 말을 기억하면서 보다 현실적으로 살라고 구박하는 새엄마 밑에서도 자신이 세상을 바꿀 사람임을 그런 자존감을 놓지 않고 잘 붙들고 살아가는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이다. 

 

아가사는 마녀 가문이라 사람들이 마녀는 불태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지금 실제적으로 마녀같은 짓(?)을 하고있는건 아니고 그냥 외국인 차별 대우처럼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며 살고 있는데 사실 마녀가문이라고 해도 여느 사람들보다 동정심이 많고 인간적이고 누구를 잘 미워하지 않으며 해코지도 못하고 그래서 소피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또 절친이 된 후로는 소피를 많이 의지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소피가 선과 악의 학교에 대해 알게되어 거기 가려고 할 때 아가사가 자기랑 같이 마을에서 살자고 자기는 너 없으면 못산다고 하면서 매달리다가 둘다 선과 악의 학교에 가게 되는데 공주가 되고 싶었던 소피는 뜻밖에도 악인의 학교에 떨어지고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먼, 미소조차도 잘 짓지 않는 아가사가 선인의 학교에 떨어진다. 

 

 

학교의 뜻밖의 결정에 소피와 아가사는 둘다 당황한다 

 

소피는 악의 학교에서 자신은 선인이라고 계속 주장하지만 다들 들어주지 않고 교장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악인들을 참다참다 그들에게 되갚아주게 되는데 뜻밖에도 전설의 악인인 라팔이 그의 부름에 응답해 능력을 펼친다. 그래서 아무도 소피에게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소피는 점점 악인이 되어가는 듯 했다. 

 

아가사는 아가사대로 자신과 맞지 않는 낯간지러운 옷과 태도를 강요하는 선의 학교에서 소피에게 가기 위해 몰래 악의 학교로 향하는데 그러다가 교장실에 가는 방법을 몰래 알아내기도 하고 또 선의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선의 학교의 모순을 알게되어 비난했다. 

 

예를들어 선의 학교는 남자들은 어중간한 무술 실력을 뽐내며 공주를 지키려고만 하는 얼간이들이고 여자들은 미모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잘 웃어야 좋은 점수를 받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다들 여기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더 꾸미고 더 잘 웃으려고 하는 외모지상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아가사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선인(?)들 사이에서 선의 학교 담당 선생님이 인정한 선인이었다. 아가사는 3번 낙제를 받으면 다른 존재로 변하는 학교의 룰 때문에 친구의 포기를 막으려다 못막고 친구가 고통스럽게 변해가는 모습에 이게 무슨 선의 학교냐고 항의하고, 소원을 이뤄주는 물고기도 세번 낙제된 학생임을 알고 자유롭게 풀려나라고 소원을 빌어 학생을 풀어주는 인간적이고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학교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점점 각자 학교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간다.

 

특히 소피는 라팔의 꾀임에 넘어가 가질 수 있는 주인공 자리를 남들이 주지 않는다면 제 손으로 얻어내기 위해 점점 악인 중의 악인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그게 멋있어 보이고 다른 선인들이 애송이처럼 보일 정도여서 좀 멋있었다. 다만 그 끝이 왕자라는게 좀 맘에 안들었는데 결국 완전한 끝이 왕자는 아니어서 좋았다. 

 

아가사는 아닌척해도 수업을 성실히 듣고있었던 듯. 악인 무리가 선인 무리를 도발하자 선인들이 다 공격하러 가는데 선인의 최고의 공격은 방어이고 공격은 상대가 먼저 공격할 때만 하는거라고 배운 것으로 열심히 친구들을 말렸다. 물론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악인 학교 친구들은 소피 말고는 그닥 주도적으로 선인 학교 친구들을 공격한 것도 아니었고 소피 혼자 도발한 건데도 선인 학교 친구들은 모두 악인 학교 친구들을 공격하러 달려갔다. 그리고 소피는 공주같은 삶을 꿈꿨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악인의 길로 들어서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했다. 그리고 아가사는 미모에 열중하는 선인 친구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물고기가 된 친구, 낙제하는 친구, 그리고 악인이 되어버린 소피를 위해 자신의 것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둘 뿐 아니라 모든 선인 학교, 악인 학교 친구들이 이렇게 사실 상 선과 악의 경계가 없이 부딪히고 하는 모습들을 보이면서 스토리는 점점 선과 악의 경계를 잃어간다. 이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다. 

 

 

소피가 선인임을 믿지 않는다고, 왜냐면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한 아가사. 

 

소피는 이 말에서 믿지 않는다, 라는 부분만 보고 흑화했지만 아가사의 이 말은 너무너무 본받고 싶은 말이다.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고 악한 사람은 곁에 두지 않고 싶어한다. 

 

착한 사람은 상을 받아야 하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는 꽤나 오래 우리를 괴롭혀왔고 지금도 괴롭히고 있다. 왜냐면 우리는 절대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착해야 한다거나, 악해선 안된다거나, 하는 논리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악한 스스로나 누군가를 비난하고 착한 스스로나 누군가는 맹신하거나 자만에 빠지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둘 사이의 경계에서 항상 어느쪽으로든 빠질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순간을 바로잡을 수 있고, 선한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잘했다고 토닥여 줄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악한 선택을 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아가사는 악해진 소피를 악해졌다고 버린다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소피가 지금 단순히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 소피읠 본질은 자신을 위해 자신을 비난하던 사람에게 후라이팬을 휘두르던 친구임을 잊지 않았다. 

 

사실 그 에피소드에서도 우리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혼란스럽다. 마녀를 비난하던 사람. 친구를 위해 사람을 때린 소피. 마녀이지만 자신을 비난하고 위협하던 사람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벌벌 떨던 아가사.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구분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가사는 선과 악으로 사람을 구별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선이기도 하고 악이기도 하다.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에게 악인처럼 후라이팬을 휘두를 수도 있고 자신의 친구를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친구를 도와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해진 룰을 어기고 부정행위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선인이다, 악인이다, 라고 구분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누구를 위해 그런 일을 했는지 살펴본다면 우리는 우리를 비난한 사람을 용서할 수도 있고, 악해보이는 행위를 한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반복하고 남을 이해하려고도 용서하려고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구는 사람을 (예를들어)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왜 용서해줘야하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태어나서부터 나는 나만을 위해 살거야,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설거야,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보다보면 또 측은지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갱생(?)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무조건 받아줄 수는 없겠지만, 그런 사람이 되거나, 또 나오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인 것 같다. 수만은 인과관계가 얽혀있는데 그 가운데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랑을 주기도 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은 때로는 너무나 쉽기도, 또 때로는 너무나 어렵기도 하다. 그 알 수 없는 선택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부딪히는 것. 그래서 갈고 닦이는 것. 그래서 나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그정도가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목표이자 삶의 이상향이라고 생각된다. 

 

내 삶의 이상향까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감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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